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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미국의 추상주의 표현 화가- 잭슨 폴록

 

폴록의 <가을 리듬>이 작품을 본다면 폴록이 어떤 그림을 그리는지 바로 알 수 있고 쉽게 잊히지 않게 각인될 것이다.
내가 폴록의 <가을 리듬>을 처음 본 순간 한순간에 각인 될 만큼 꽤나 강렬하게 다가왔다

전후 미술의 역사는 폴록의 드립 페인팅과 더불어 시작된다.
폴록을 통해 전전의 차가운 기하학적 추상은 뜨거운 표현적 추상으로 변화한다.
하지만 이 온도의 차이보다 중요함것은 폴록의 전면화에서는 형 자체가 해체되고 형과 배경 사이의 관계주의 마저 포기된 다는 점이다
클레멘트 그린버그는 이를 근거로 미국의 회화가 평면성과 순수성을 향한 모더니즘의 기뢱에 대해 전전의 유럽 미술보다 더 높은 성취를 이루었다고 주장할 수 있었다 폴록의 작업은 후기 모더니즘의 출발점이자 이후 미국과 유럽에서 전개될 거의 모든 예술운동의 미학적 준거가 된다.

폴록은 1947년 1월
이젤의 수직으로 세운 캔버스 위 동물 비슷한 형태를 그리고 있었다
그러다 돌연 캔버스를 바닥에 눕히고 그 위 물감을 부었다
거기서 새로운 조형의 가는성을 본 것이다
그 후
한스 나무스의 영상으로 그의 사진 속의 폴록은 물감으로 범벅이 된 작업화를 신고 페인트 통에 든 물간을 막대류 찍어 바닥에 깔린 캔버스 천 조각 위로 흩뿌린다. 어떤 규범에도 매이지 않고 내면의 기를 발산하는 자유로운 영혼에서 폴록의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폴록은 자신의 예술에
"내 그림은 이젤에서 나오지 않는다. 나는 글리기 전에 천을 팽팽하게 펴지도 않는다 펴지도 않는 천을 벽에 걸어 놓거나 바닥에 펼쳐놓는다
내게는 딱딱한 표면의 저항이 필요하다 바닥에 펼쳐 놓은 게 더 편하다. 그 편의 그림에 더 가깝고, 더 그것의 일부가 된 느낌을 준다. 왜냐하면 그 주위를 걸어 다니며 네 귀퉁이 어디에서나 작업할 수 있고 글자 그대로 그림은 에 '안에'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폴록이 이젤을 사용하지 않은 것은 "현대적 감각의 경향이 벽화를 지향" 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가을 리듬>, <넘버 1> 작품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실제로 그림보다 벽지처럼 보인다. 액자 안과 밖의 구별이 흐려지고 그의 작품에서 화면의 전후좌우의 구별이 사라지면 화면은 마치 무중력 상태처럼 느껴진다.
"눈의 띄는 변화 없이 캔버스 한쪽 끝에서 다른 끝까지 되풀이" 되는 "시작도 중간도 끝도 없는 종류의 그림" 이것을 '전면화'라 부른다
이것이 폴록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이다.

또 하나의 특징으로 '드리핑 기법'
폴록은 "내가 사용하는 물감은 대부분 유체 즉 흘러낼리는 종류의 물감이다.
나의 붓은 붓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막대기로 사용된다.
붓은 캔버스 표면에 닿지 않는다. 그것은 바로 위에 있다"

붓이 캔버스에 닿지 않는 그림 이 말만으로도 폴록의 작품은 흥미롭고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1950년 베네치아 비엔날레에 처음 소개되었을 때 폴록의 작품은 관심을 끌지 못했고 한 평론가 만이 혼돈의 상태라는 작품에 혹평을 남겼다 한다.
지금 이 시점에서 바라보는 폴록의 작품은 어떤가요?
폴록은 액션 페인팅, 전면화를 통해 표현하고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었을까?

폴록의 추상표현주의는 격렬한 제스처 초현실주의에서 유래한 표현의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즉흥적 화법은 앙드레 브레통의 '자동기술법'을 연상시킨다
그림의 원천이 '무의식'에 있다고 말한 데서 일수 있듯 폴록은 자기가 초현실주의의 연장선 위에 있다고 믿었다.

폴록은 우울증과 알코올 의존증으로 힘든 세월을 보냈고 교통사고로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였지만 폴록의 영향은 미국미술이 유럽 영향에서 벗어나 전 세계를 주도하는 국제적 양식이 될 수 있었고 미국 내에서 많은 이론적 논쟁의 원천이자 미술운동의 영감이 되었다.

지금에서의 폴록은 폴록의 작품을 보는 우리를 보고 어떤 작품을 그릴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