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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미국의 팝아트-재스퍼존스,리우센버그 그리고 앤디워홀

 

 

재스퍼 존스,
라우센버그,
리히텐슈타인,
워홀,
올덴버그,
로젠 퀴스트,
에세르만,
등 대표적으로 손꼽히는 작가로
1960년대 뉴욕을 중심으로 미술의 큰 물결로 미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큰 영향을 주었다.

모더니즘의 종언을 확실히 보여준 팝아트는
장인성을 포기함으로써 대량생산을 미메시스 하며, 복제를 다시 복제 함으로써 독창성의 신화를 무너뜨리고 대중 매체의 이미지를 받아들임으로써 대중의 취향을 긍정한다

팝아트의 아버지라 불리는 재스퍼 존스
존스의 회화는 "추상적이지만 양식에서 재현적"
"회화적이지만 동시의 실제 물건을 연상"
"이미지인 동시에 오브제"
라는 평을 받기도 했지만
존스가 작품의 모티프로 삼은
국기, 과녁, 지도, 숫자, 알파벳 등은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미지들이지만
존스는 그것들을 안료에 고착제 역할을 하는
뜨거운 밀랍을 섞는 납 화법을
이용하여 작품이 인위적이며
예술적 가치를 지닌 대상처럼 보이게 표현했다.
따라서
그의 작품은 그려진 화면이자 동시에
이차원적 평면성을 지닌 오브제라고 하는
이중 구조적 특색을 지닌다.
그의 이러한 방법론은 사물의 모방이 아니라 사물 그 자체라는 미학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팝아트의 또 다른 시조로 여겨지는 로버트 라우센버그
오브제를 이용한 콤바인 회화를 만들어
추상 표현파에서 독립했다. 이어서 실크 스크린에 의한 시사적 화제의 이미지를 배합한 화면에 오브제를 첨가하는 독특한 표현법으로 팝 아트의 중심적인 존재가 되었다.
여기서 콤바인 회화는 콜라주의 확대된 개념으로
사진을 포함한 실제 사물을 채색된 화면에 붙이고 난 결합시켜 다양한 종류의 재료들을 한데 모음으로써 각각의 미적 계급 차이를 없애고자 한 것이다.

 

라우센버그의 '콤바인'이나 재스퍼 존스의 <깃발>등의 작품은 작가의 개성적 터치, 수작업의 흔적이 남아 있어 회화적인 작품이다.

완전히 팝아트가 되려면 작가의 인격적 흔적이 없이 화면이 인쇄물의 표면처럼 매끈해져야 한다
기계적 생산, 작가의 익명성이 팝아트의 본질적 특성이기 때문이다
대량생산의 느낌을 주는 본격적 팝아트는 로이 릭턴 스타인이다
그는 1961경부터는 만화로 관심을 돌려 독자적 스타일의 작품을 제작하였음. 일상품과 만화, 광고 등 기성품 이미지로 그의 작품은 산업적으로 생산된 레디메이드인 인쇄된 만화처럼 보이지만
기계 복제-수작업-기계 복제-수작업을
오가며 어디까지가 수작업이고 어디까지 대량생산인지 구별할 수 없는 지점까지 나아간다
따라서 릭턴스타인의 작품은 '핸드메이드 레디메이드'라 불린다.
릭턴스타인은 자신이 차용한 이미지에서 싱 품명을 제거했다 또 상업미술과 거리를 두며 여전히
창조성, 독창성의 개념을 고수했다

이에 팝아트의 제왕이라 불리는 앤디 워홀은
'독창성'을 파괴했다
그는 작품이 독창적이거나 개성적으로 보이길 원치 않았다
<캠벨>, <브릴로>, <코카콜라>등 자신이 차용한 이미지의 상품평을 그대로 사용했고 스스로를 '상업미술가'라 불렀다
대중미술과 순수미술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미술뿐만 아니라 영화, 광고, 디자인 등 시각예술 전반에서 혁명적인 변화를 주도하였다.
실크스크린 판화 기법으로 제작하였고
유명 연예인 아이콘과 대중 잡지 표지등을 그의 스튜디오인 '팩토리'에서 조수들과 함께 대량 생산했다

앤디 워홀은

"예술가는 사람들이 가질 필요가 없는 것들을 생산하는 사람이다"

"예술은 당신이 일상을 벗어날 수 있는 모든 것이다"

라는 말을 남겼다.

 

지금껏 보았던 라우센버그, 재스퍼 존스, 앤디 워홀
이 들의 작업은 르네상스에서 모더니즘까지의 회화적 관습에서 종지부를 찍은 회화사의 역사로 기록된다.